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
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
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
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
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힘있지도,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선함이나 채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
는 편안했다.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 박식한 척 할 필요가 없었고,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허둥대지 않아도 되었으며, 패션 카탈로그에 나오는 남자들과 스스로를 비
교해 위축될 까닭도 없었다. 이십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랫배,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는
가느다란 다리와 팔뚝, 남모를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작은 성기까지, 그녀에게는 그자디 신경쓰
이지 않았다.
언제나 나는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나보다 두세살 어린 조무래
기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했고, 자라서는 넉넉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지원했으며, 내 대단찮은 능력을 귀하게 여겨주는 작은 회사에서 내세울 것 없는 월급이나마 꼬
박꼬박 받을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그녀와 결혼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예쁘다거나, 총명하다거나, 눈에 띄게 요염하다거나, 부유한 집안
의 따님이라거나 하는 여자들은 애초부터 나에게 불편한 존재일 뿐 이었다.
내 기대에 걸맞게 그녀는 평범한 아내의 역할을 무리없이 해냈다. 아침마다 여섯시에 일어나 밥
과 국, 생선 한토막을 준비해 차려주었고, 처녀시절부터 해온 아르바이트로 적으나마 가계에 보
탬도 주었다. 일년간 다닌 적이 있다는 컴퓨터그래픽 학원의 보조강사로 일했고, 출판만화의 말
풍선에 대사를 처넣는 하청일을 받아 집에서 작업했다.
아내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일은 드물었고, 내 귀가시간이 아무
리 늦어도 관여하지 않았다. 어쩌다 함께 있는 휴일에 어딘가로 외출하기를 청하지도 않았다. 내
가 오후 내내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고 뒹구는 동안 아내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마도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모양으로-- 아내의 취미라 할 만한 것은 기껏 책 읽기 정도였는데. 그 책
들이란 대부분 표지를 열어보기도 싫을 만큼 따분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끼니때에만 문을 열고
나와 말없이 음식을 만들었다. 사실, 그런 아내와 산다는 게 그다지 재미있는 일일 리는 없었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번씩 직장동료나 친구 들의 휴대폰을 울려대는 아내들, 주기적으로 바가지를
긁어 요란한 부부싸움을 벌이곤 한다는 아내들이 피곤하게 느껴지던 터였으므로 나는 감사히 여
겼다. 오직 한가지 아내에게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짧고 민숭민숭했던 연애시절, 우연히 그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가 스웨터 아래로 브래지
어 끊이 만져지지 않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조금 흥분했었다. 혹 그녀가 나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 잠시 새로운 눈으로 그녀의 태도를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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